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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은 외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어느 날 일어나며 자신의 인생이 살아지고 화재로 죽은 선생님의 삶을 살게 되는 영화다. 정진영 배우의 감독 데뷔작인데다가 각본까지 쓴 영화라 주목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정말 여러모로 내 기대와는 달랐으며, 다른 것을 몰라도 상당히 놀랍고 당혹스러운 작품이었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도 좀 신기하지만 이를 스토리텔링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수사물의 설정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법은 이에 반한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관객에게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 미스터리 수사물이 대체 웬말이냐는 말이다. 거기에 영화에 있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묘하게 얽히며 영화의 이야기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에는 '곡성'인가하고 봤던 영화가 점점 완전 다른 이야기로 변모했다. 이 영화는 조진웅이 연기하는 형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인 형사는 전형적인 워커홀릭 꽉 막힌 경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자신이 인생이 사라지고, 피해자의 삶을 이어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형사에게 공감과 이해의 여정을 주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참 힘든 것이다.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지금 무슨 감정을 겪고 있는지를 알기도 힘든데, 남이 겪은 고통이나 인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냐는 말이다. 세상의 여러 직업들 중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직업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두 개가 형사, 그리고 교사다. 하지만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다르다. 형사는 속으로 들어가 무너뜨리기 위해, 교사는 들어가 위로해주고 성장시켜주기 위해 마음 속으로 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자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후자의 삶을 강요받게 된다. 그 과정은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점차 주인공은 누군가를 위로해주기 위해 이해한다는 것,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공감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을 하면서 배우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형사로서도 자신이 가졌던 의문과 욕구를 해결하게 되며, 더 이해심이 많은 인물이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많으며 절대로 친절한 편도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신선한 시도들과 화법이 있는 만큼 각본 겸 감독인 정재영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연출적으로도 상당히 신기한 영화였다. 특이한 각도와 구도들이 많았고, 이상한 코미디도 있었고, 어떤 컷들은 왜 있나 싶기도 하면서 어떤 컷들은 왜 이리 길게 끌지 싶기도 했고, 달파란의 음악도 일관되기 보다는 그 순간순간에 따라 계속 변모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배우 출신 감독에 대한 내 인식을 깼다. 배우 출신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연기가 좋다는 관념이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며 그 관념이 조금 바뀌었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엄청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진웅 배우 정도는 상당히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나머지 조연들은 연기 톤이 나는 연기를 했다. 이런 연기 연출이 어느 정도는 감독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상당히 이색적으로 느껴졌으며, 솔직히 조금 불호였던 포인트이기도 했다. 정진영 감독은 데뷔작에서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고,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이 새롭고 신선하고 놀랍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의 감정이 언제나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안 잊혀질 데뷔작임은 분명하며, 정진영 감독의 차기 행보가 궁금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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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부터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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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거의 시간 순서를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크게 네 개의 큰 전환점들이 있다고 본다. 영화는 밤마다 죽은 사람의 영이 드는 여인과 그의 남편인 마을 초등학교 선생을 소개한다.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능력이 들켰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죽게 됐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화재로 사망한 그 날 아침이 영화의 첫 전환점이다. 이 전환점 이전까지 영화는 영화의 중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설명해준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물어볼 질문에 대한 표면적인 해답을 이미 관객한테 다 준 것이다. 그리고 첫 전환점은 주인공의 등장으로 그 다음 부분을 맞이한다.

 

영화의 다음 부분은 전형적인 수사물이다. 배경이 상당히 외지고 모두가 모두를 아는 작은 마을이면서 초능력적인 면이 가미됐다는 점에서 '곡성'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이 사건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수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본문에 말했듯이, 관객이 이미 아는 미스터리를 극중 캐릭터가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하다. 따라서 이 수사 과정은 미스터리를 풀거나 스릴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주인공을 소개하는 파트다.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형사이면서 자신의 일에 매우 열정적이고 프로페셔널하면서 한번 물면 안 놓는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그는 불통이다. 용의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전해도 절대 안 믿는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일 때문에 잠 든 모습으로 밖에 못 만나고, 아내와도 소통 단절이 있으며, 이를 아내는 직접적으로 꼬집는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감정과 공감을 주고 받지를 않고 오로지 혼잣말로 자신과만 이야기하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두 번째 전환점이 찾아오며 모든 것이 바뀐다. 그 두 번째 전환점은 그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술 취한 형사는 잠에 들기 전에 불 탄 집을 보며 당신들의 이야기를 알려달라는 물음에서 말이다.

 

이후 영화는 형사가 갑자기 수사하던 죽은 선생의 삶을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가 깨어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 모든 것은 죽은 여인의 기억들로 이뤄진 꿈이라는 것이다. 죽은 여인은 해가 지면 다른 사람들의 혼을 자신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능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만약에 죽어서도 그 능력이 유효했다면, 어쩌면 어두운 밤에 불 탄 집 앞에서 술에 취해 널브러진 형사의 혼이 잠심 죽은 여인의 머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머리 속은, 영화에 나오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의 파편들로 이뤄진 꿈이라는 세상인 것이다. 요컨대, 조진웅이 선생님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사실 죽은 여인의 꿈과 같은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상에 익숙해진 불통의 형사는 당연히 모든 것이 바뀌고, 심지어 소통을 강요하는 직업을 맡게된 이 세상을 쉽게 받아들일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거부하며, 끝에는 살인까지 범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시도하지만 이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다. 결국 그는 체념을 하며 사실상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산다. 하지만 결국 그는 셋째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바로 사라졌던 자신의 아내와의 재회다.

 

당연하지만 이 사람은 더 이상 형사의 아내가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조진웅은 그녀와 만난 그 순간에 그동안 할 수 없던 말들, 부부라는 가까운 사이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완전히 남이 돼 만난 그녀에게 절박한 용기를 내어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게 된다. 비록 이 세상에선 아무 의미가 없을지언정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본문에 말했듯이 형사와 교사는 둘 다 타인의 마음을 파악해야하는 직업들이다. 그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형사였기 때문에 불통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에게 소통의 삶의 가능성이 열렸지만 형사로서의 삶도 가능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균과 그의 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은 형사로서의 기지를 발휘해 진규의 사물함을, 다시 말해 그의 마음 깊숙한 부분을 연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그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저 사건의 유력 용의자이면서 심지어 이 세상에서는 죽이려고까지 한 해균과 영화 도중에 별 이유 없이 울린 진규에게 사실 그들 곁은 떠난 외국인 아내이자 엄마가 있었다는 점, 다시 말해 다문화 홀아비 가정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전환점은 영화의 거의 끝에 나온다. 우선 그 전에 주인공은 아주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바로 뜨개질 선생님이다. 이 뜨개질 선생은 영화 초반에 죽은 여인을 가르쳤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빌린 죽은 여인 본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뚜렷한 이유는 뜨개질 선생이 죽은 여인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조진웅에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마을에 두 명이 있었다고 보는 것보다는 죽은 여인의 꿈 속에서 본인이 다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같이 목욕탕에 간 조진웅과 뜨개질 선생 옆에 죽은 부부가 다정하게 물 속으로 들어오는 씬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나는 감독이 시각적으로 이 두 쌍의 남녀가 서로 대응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아서다. 뜨개질 선생은 자신의 능력을 조진웅에게 털어놓는데, 이 씬도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죽은 여인이 생전에 남편이 될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그 떨리는 순간의 기억이 형상화됐다는 면이다. 다른 하나는 조진웅의 질문에 답을 해줬다고 알려주기 위해서다. 다시 두 번째 전환점을 생각해보면, 조진웅은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이 사건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대체 이 사건에 대해 뭘 더 알려줘야한다는 말인가. 이 사건의 본질은 누전으로 인한 불행한 화재나, 누가 철창을 달자고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 죽은 여인의 능력, 혹은 어떤 면에서는 저주가 이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 능력 때문에 여인은 평생동안 엄청난 외로움과 비애를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이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알려줬을 때, 그 사람이 이를 이해하고 감싸줬을 때의 그 안도감과 행복감은 이뤄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 때문에 서울에서의 삶을 버리고 한적한 시골로 오게 됐지만, 그 시골에서 마저도 사람들의 시선을 못 피한 비극을 과연 경찰 수사로 다 알 수 있었을까? 형사는 결국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받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 그는 죽은 부부의 인생을 며칠동안 경험하면서, 그 또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캐릭터 성장은 영화에서는 계절의 변화로도 암시가 된다. 그리고 끝내, 죽은 여인이 자신을 이해하냐고 물었을 때, 조진웅은 무덤덤하지만 진실되게,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게 죽은 여인은 조진웅의 질문에 답을 해준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수미상관의 형태로 오프닝 크레딧과 동일한 씬이다. 아무런 맥락 없이 슬로우 모션으로 길을 걷는 조진웅의 모습일 뿐이다. 나는 이 씬에서의 조진웅은 꿈에서 깬 형사라고 생각한다. 옷차림이나 얼굴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또한, 질문에 답을 받는 그는 더 이상 꿈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흑백,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옳고 그름만 있던 그의 모습에, 이제는 여러 사람들의 빛이 담긴 컬러가 담겨있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이 이 길고 기묘한 꿈을 통해 더욱 성장한 사람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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